올레 9코스를
역방향으로 걷다
2026년 2월 20일 · 세쌍둥이와 아빠 제라드림
오늘은 올레길 9코스를 걷는 날. 코스는 짧지만 군산오름을 올라야 해서 난이도 별 세 개짜리 꽤 만만치 않은 코스다. 어제 8코스 마지막 스탬프를 찍었던 종점으로 돌아가는 대신, 9코스의 종점인 화순금모래해변으로 먼저 버스로 이동해 스탬프를 먼저 찍고 역방향으로 출발하는 색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아침 햇살 아래 파란 하늘과 올레길 안내판이 반겨주는 출발지, 설렘 반 긴장 반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검색으로 발견한 고은물식당. 아침부터 영업하는 곳이라 든든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고은물정식 2개와 김치찌개 2개로 네 식구 배를 채웠다. 계란말이, 구운 생선, 제주산 나물 반찬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후한 상차림. 걷기 전에 이만한 밥상이 어디 있겠나 싶었다.
밥도 맛있게 먹고, 귤까지 서비스로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걷는 9코스가 별 세 개짜리 난이도라 살짝 긴장되기도 했지만, 아이들 표정을 보니 걱정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일단 가보는 거지, 뭐.
역방향으로 본격 출발. 화순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나무 데크가 깔려 있고 한쪽 벽면에는 타일로 장식된 예술 작품이 이어진다. 아이들이 타일 벽에 얼굴을 바짝 대고 들여다보며 저마다 신기해했다. 바다 냄새와 2월의 선선한 바람, 야자수까지 보이는 풍경에 잠시 남쪽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걷는 중간, 현무암 돌담 너머로 벚꽃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2월인데 벚꽃이라니. 제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야자수와 비닐하우스, 그리고 흰 벚꽃이 한 화면에 담기는 이 묘한 조합— 분명 겨울이었는데 봄이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불러 "이거 봐, 벚꽃이야!" 했더니 다들 "진짜요?" 하며 달려왔다.
2월에 벚꽃이라니. 서울에서 이런 걸 보려면 4월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제주는 달랐다. 겨울 올레길이 이렇게 특별한 이유가 바로 이런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 눈도 반짝반짝, 아빠 마음도 반짝반짝.
드디어 군산오름 정상. 별 세 개짜리 난이도답게 올라오는 길이 가파르고 숨이 찼다. 그래도 세쌍둥이 녀석들은 아빠보다 훨씬 빨리 올라와 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 남쪽 바다와 하얀 비닐하우스들이 펼쳐진 풍경은 힘든 오르막을 보상하고도 남는 장면이었다. 파란 스탬프 의자에 앉아 네 사람 모두 올레 9코스 스탬프를 쾅쾅 찍었다. 이걸로 9코스 완주!
STAMP
올레 9코스 — 군산오름 중간 스탬프 완료
코스 거리 약 8.3km · 소요 약 3시간 · 난이도 ★★★
화순금모래해변 → 군산오름 → 화순항 (역방향 완주)
오르막이 생각보다 훨씬 가팔랐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는데 세쌍둥이는 벌써 정상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얄밉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스탬프를 찍는 순간, 힘들었던 기억이 싹 사라지는 게 올레길의 마법인 것 같다.
9코스를 완주하고 오후에는 액티브파크 제주로 이동하기 전, 이전에도 들렀던 삼대국수회관 협재점에서 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세쌍둥이들은 고기국수에 돔베고기, 나는 한우스지국수 — 아이들이 워낙 이곳을 좋아해서 "또 여기야?" 하면서도 자리에 앉자마자 후루룩 먹어치웠다.
점심 후 이동한 곳은 액티브파크 제주. 이전에도 와봤던 실내 암벽등반 시설이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안전 장비를 장착하고 안전 교육을 받은 뒤, 아이들의 눈은 이미 저 높은 벽 위를 향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클라이밍 벽들이 천장까지 솟아 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광경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열이의 버티컬 드롭 슬라이드 도전. 지난번에는 "아이고" 선에서 손을 놓았는데, 이번엔 아빠가 "지리고 선까지 버티면 소원 들어줄게"라는 특급 제안을 했다. 그 말 한마디에 대열이, 진짜로 지리고 선까지 버텼다. 딸들은 "저는 안 해요"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대열이 표정에는 두려움인지 뿌듯함인지 모를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아이고 → 오지고 → 지리고. 저 세 칸의 거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해본 사람만 안다. 대열이가 "지리고"까지 버텼을 때 아빠는 속으로 '야, 진짜 대단한데' 싶었다. 딸들이 안 한 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영리해서라고 해두자.
호텔로 복귀해 씻고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제주 시내 흑돼지 구이집을 몇 군데 돌아봤지만 다 만석. 역시 제주 흑돼지의 인기는 대단하다. 발품을 팔다 찾아낸 굽담(신광로 65)에 자리가 있었다. 제주 흑돼지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쌈채소에 소주 한 잔—세쌍둥이에겐 음료로—아빠에겐 딱 필요한 하루 마무리였다.
올레 9코스 완주, 암벽등반, 흑돼지까지. 오늘 하루 참 많이도 걸었고, 참 많이도 웃었다. 내일은 애들 엄마, 막내 리하, 그리고 민범이네·득열이네 가족과 합류해서 어리목-영실 코스 등산이 기다리고 있다. 새벽 6시 도착 예정이니 일찍 자야겠다.
어리목 – 영실 코스 등산 예정
애들 엄마 · 막내 리하 · 민범이네 · 득열이네와 합류
새벽 1시 목포 출발 → 새벽 6시 제주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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