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8인의 원정
증심사에서 인왕봉까지 — 우정과 막걸리로 버텨낸 하루
새벽 집결 — 남악복합주민센터
아직 하늘이 채 밝아오지 않은 새벽, 남악복합주민센터 앞에 다섯 개의 실루엣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김장일 형님, 조동선 형님, 한혁승 형, 은하 누님, 그리고 나.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서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말 없이도 모두의 얼굴에 같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 설레면서도 살짝 긴장되는, 그 새벽 특유의 두근거림.
차에 올라 김영균 상무님을 픽업한 우리는 무등산 입구로 향했다. 창밖을 스쳐 지나는 가로등 불빛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무등산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남악복합주민센터
전남 무안군 남악신도시. 무등산 방향으로 차로 약 1시간 거리. 새벽 출발에 최적인 집합 지점.
산행 전 아침 만찬 — 증심사 입구
증심사 입구에 도착하니 광주에 사시는 한승구 형님과 박상철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악수와 함께 곧장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산을 오르기 전 먹는 아침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 일종의 의식(儀式)이다.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데우고, 막걸리 한 사발로 긴장을 풀고, 소주 한 잔으로 오늘 하루를 향한 건배. 말 없이도 서로의 눈빛이 통했다. 오늘도 잘 부탁한다.
증심사 입구 인근 음식점
무등산 증심사 방면 등산로 초입의 식당들. 이른 아침에도 운영하며, 보쌈·국밥류와 막걸리를 곁들이는 것이 이 지역 등산 문화. 8인 단체 방문 시 예약 권장.
드디어 발을 내딛다 — 증심사 주차장
증심사 주차장에서 8명이 나란히 발을 내딛었다. 숲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무와 흙이 내뿜는 특유의 신선한 향 — 이것이 바로 산이 주는 첫 인사다.
저 멀리 무등산의 능선이 하늘 위로 펼쳐져 있었다. 저 꼭대기를 향해 오늘 우리가 올라가는 것이다. 설레면서도 저 높이가 주는 묵직한 압박감이 없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증심사 (證心寺)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통일신라시대 고찰. 무등산 산행의 대표 기점으로 넓은 주차장과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증심사→중머리재 약 1.5~2시간 소요.
산 위의 잔치 — 머릿고기·홍어·딸기
누가 이렇게 잘 준비했을까. 배낭에서 나온 것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 머릿고기, 홍어, 딸기, 오렌지, 그리고 막걸리.
소나무 그늘 아래 바위 위에 자리를 폈다. 산 위에서 먹는 홍어는 평소보다 세 배는 더 맛있었다. 딸기의 붉은 빛이 산 바람에 반짝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막걸리 한 잔의 무게감이 달라진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유난히 가볍다.
지나가던 다른 등산객들이 흘끔흘끔 쳐다봤다. 부러움인지 의아함인지 —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산을 오르는 이유가 꼭 정상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펼쳐진 이 잔칫상 하나가, 오늘의 산행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홍어 한 점, 막걸리 한 잔 — 이것이 우리 산행의 방식이다.
중머리재 전망대 — 첫 번째 절경
중머리재에 이르러 처음으로 전망이 트였다. 바위 전망대 위에 올라서자 광주 시내와 주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 첫 번째 탁 트임 — 숲에 가려있던 시야가 갑자기 열리는 그 순간의 감동은 언제나 새롭다.
모두 배낭을 내려놓고 한숨 돌렸다. 여기서 사진도 찍고, 서로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직 정상은 멀었지만, 첫 봉우리를 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이 났다.
장불재 — 억새와 하늘이 만나는 곳
장불재에 다다르자 갑자기 시야가 완전히 열렸다. 드넓은 억새 평원 뒤로 입석대의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솟아오른 장관이 펼쳐졌다. 이 개방감 — 숲길을 한참 걸어 능선에 올라섰을 때 갑자기 만나는 이 탁 트인 고원의 느낌은 어디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다.
능선의 바람이 세찼다. DSTC 산악회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뒤로 보이는 입석대와 천왕봉 능선이 오늘의 목적지를 눈에 보이도록 새겨주었다.
장불재 (해발 약 919m)
무등산 능선의 넓은 고원 평지. 억새군락과 사방으로 열린 조망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입석대·서석대·천왕봉 등 무등산의 핵심 봉우리들을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지점. 무등산국립공원 탐방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상고대의 세계 — 장불재에서 인왕봉으로
장불재를 지나 인왕봉을 향해 나무데크를 따라 오르기 시작하자, 세상이 달라졌다. 나무마다 상고대(霜花)가 피어 사방이 하얗게 빛났다. 서리꽃이 핀 겨울 능선 — 이것은 그냥 풍경이 아니라 산이 선사하는 선물이었다. 말을 잃게 만드는 순백의 세계.
나무데크가 굽이굽이 인왕봉을 향해 이어졌다. 발 아래로 광주 시내가 아득히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세상이 작아졌다.
상고대(霜花)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때 대기 중 수분이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만들어지는 자연현상. 무등산 능선부에서는 겨울~이른 봄 사이 자주 관찰된다. "무등산의 설화(雪花)"라고도 불리며, 등산객들이 특별히 찾는 절경이다.
입석대 · 서석대
입석대(1,017m): 높이 5~7m 주상절리 기둥들이 병풍처럼 늘어선 장관. 천연기념물 제465호. 서석대(1,050m): 무등산을 대표하는 또 다른 주상절리대로, 노을 때 황금빛으로 물든다. 두 곳 모두 국가지질공원 구역.
인왕봉 정상 1,164m — 광주를 발 아래에
드디어, 정상.
"인왕봉 1164m" 표석 앞에 섰다. 발 아래로 광주 시내가 한눈에 펼쳐졌다. 이 느낌 — 발 아래로 세상이 펼쳐지는 이 감각을 무어라 표현할까. 두려움과 환희가 뒤섞인 그 현기증 같은 벅참. 땀과 함께 흘러내린 것들이 있다면, 바로 일상의 무게들이었다.
8명이 나란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새벽에 모여 이 높이까지 올라온 것이, 그 자체로 충분했다.
"발 아래로 광주가 보였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를,
그 풍경이 말해주었다."
인왕봉 (해발 1,164m)
무등산에서 일반 탐방객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천왕봉 1,187m은 군부대 관할). 날씨 좋은 날에는 서해와 광주 시내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정상에 "인왕봉 1164m" 표석이 세워져 있으며, 무등산국립공원 탐방로 관리 구역에 속한다.
정상에서 담은 얼굴들
정상에서 찍는 사진은 평소보다 더 밝게, 더 진하게 남는다. 오늘 함께한 8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록해 둔다.
산에서는 사람도 풍경이 된다. 그런데 오늘, 풍경 이상의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 핑크 기류 경보 발령 🌸
등산로를 오르는 내내 박상철과 은하 누님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류가 흘렀다. 발걸음의 간격이 묘하게 좁고, 웃음의 빈도가 유독 잦으며, 서로의 배낭 끈이 걸릴 뻔한 횟수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이것은 단순한 동행인가, 아니면… 무등산이 맺어준 인연인가.
그런데 그 순간, 김영균 상무님이 등장하셨다. 🎬
마치 로맨스 영화의 방해꾼 캐릭터처럼, 혹은 사랑의 큐피드처럼 — 상무님은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셨다. 표정은 너무나 순수하고 해맑으셨지만, 타이밍만큼은 신의 경지였다. 핑크빛 공기를 온몸으로 흡수하신 상무님의 미소가 오늘따라 유난히 밝게 빛났다.
박상철은 애써 태연한 척, 은하 누님은 여유 있게 웃으셨지만 — 카메라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있는 그 순간, 김영균 상무님이 스윽 나타나셨다.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상무님은 이미 그 자리에 계셨다.
하산 — 중머리재에서 토끼등으로
하산은 중머리재에서 토끼등 방향으로 잡았다. 올라온 길과는 다른 능선이었다. 올라갈 때의 설렘이 있다면, 내려올 때는 차분한 마무리의 감정이 있다. 이 산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발걸음을 내디디며 천천히 정리하는 시간.
증심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광주에 사시는 한승구 형님과 박상철은 각자 자리로 돌아갔고, 남은 여섯 명은 목포로 향했다.
토끼등 코스 (중머리재 → 토끼등 → 증심사)
중머리재에서 토끼등을 경유해 증심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 올라온 길과 다른 능선을 경유하는 원점 회귀 루트. 하산 소요 시간 약 1.5~2시간. 경사가 완만하고 숲이 우거져 하산 시 피로를 덜 수 있다.
목포 뒤풀이 — 돼지고기 & 쏘맥
목포에 도착하니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돼지고기가 불판 위에서 익어가고, 쏘맥이 차가운 잔에 담겨 나왔다. 첫 잔을 들이켜는 순간 —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녹아 흘러내리는 그 느낌. 어깨의 뭉침도, 다리의 뻐근함도, 모든 것이 쏘맥 한 잔과 함께 내려앉았다.
오늘 올라간 산이, 오늘 만난 사람들이, 오늘 나눈 이야기들이 이 한 잔 안에 담겨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산을 오른 날의 마무리는 언제나 이래야 한다.
새벽 어스름에 모여 밤의 목포에서 잔을 기울이기까지, 긴 하루였다. 무등산은 우리에게 고됨도 주었지만, 그 이상의 것들을 되돌려주었다. 1,164m 높이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작음, 상고대 능선에서 맞은 바람의 서늘함, 그리고 옆자리에서 함께 숨을 헐떡이던 사람들의 따뜻함. 또 가자.
에필로그 — 다음 여정을 기약하며
무등산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다음 여정을 그리고 있었다. 제주의 새벽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DSTC 산악회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무등산의 땀이 마르기 전에, 다음 산과 바다를 향해 또 나아간다. "산과 바다 하나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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